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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야기

flowing..

아주 오랫만에 flowing 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이 말.. 대학처 시절에 간혹 들었던 것 같아..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개인의 소유를 부인하고

전 재산을 헌납하여 공동 소유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런 완전한 공유까지 가지는 못하더라도..

가진 것.. (남는 것.. 또는 넉넉하지 않지만 내게 있는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흘려보내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지..

 
이것 역시..

내가 좋아하는 인과의 법칙의 일부라고 생각해..

물이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공기가 밀(密)한 곳에서 소(疎)한곳으로 불듯..


마음도 넉넉한 곳에서 부족한 곳으로 흐르고..

재물도 많은 쪽에서 부족한 쪽으로 흘러야 맞는 것이야..


그래서.. 내가 흘려주면..

누군가가 나의 필요를 또한 채워주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인 것이지..



혹시.. 나만 흘려보내고 아무도 나에게 흘려보내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뭘로 보는거야..

그 정도는 하나님이 직접 채워주실 걸..

직접 채워주실 수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맡겨 두는 것은..

그 흘려주는 사람에게 복을 주고 싶은 하나님의 마음이지..


누군가가 욕심이 많아서..

자신이 넉넉하면서도 흘려보내지 않아 이 흐름을 끊어놓는다면..

고인 물과 같이 썩어버릴 것이야..


들은 얘기지만 사해(死海)가 그렇다더군..

요단강물이 흘러들어오지만 흘러나가는 곳이 없고 오직 자연 증발만 되기 때문에..

흘러들어온 유/무기물이 누적되어 보통 해수의 몇 배나 되는 농도를 가지고 있다고..

덕분에 몸을 띄워 유명해지긴 했지만 물에서는 썩은 내가 난다고 하더라고..



아무튼..

움켜쥐지 말고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 이쁨받는 길이라는..

'긍정의 힘'에 나온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야..





그런데..

왜 지금은 교회에서 완전한 물질/재정의 공유를 추구하지 않는 것일까?

아마도 종교의 자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초대 교회에서는 죽음을 불사하고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재물이 비교적 중요하지 않았을 것 같아..

게다가 죽음을 무릅쓰고 사기치는 사람도 흔치는 않았겠지..


그런 이유로..

자연스럽게.. 소극적 flowing을 하게 된 것이겠지..

하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풍성한 자는..

자연스레 더 적극적으로 flowing을 하게 될 것이야..

그는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고..


이것이 내가 아는 또 하나의 인과(因果)의 법칙..



간만에 끄적거리려니 시간도 오래 걸리고 열라 어렵네..

그만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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